따뜻한 정이 넘치는 동네 사랑방 고재영 빵집 취재 • 글 박선아 사진 이재희 ‘자신’과 싸우며 버텨온 10년 산본역 바로 앞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는 10년째 뚝심 있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빵집이 하나 있다. 6평 남짓한 조그만 공간이지만 알찬 내실을 자랑하는 고재영 빵집이 바로 그 곳. 김제 자영고등학교 식품가공학과를 졸업한 고재영 셰프는 밀탑 베이커리, 63베이커리, 올리브 베이커리 등을 거쳐 2007년, 산본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내건 ‘고재영 빵집’을 오픈했다. 호기로운 마음을 가지고 시작한 것과는 달리 고재영 빵집은 오픈과 동시에 손님들의 차가운 외면을 받아야만 했다. 이곳을 중심으로 반경 1km 내외에 7~8개의 빵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어 그야말로 베이커리 격전지가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경영난으로 매장과 주방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하나둘씩 떠났을 때 셰프는 조급해 하기는커녕 오히려 앞치마를 더 질끈 동여맸다. “자영업은 장거리 마라톤이거든요. 단기간에 대박을 내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스트레스만 받고 무리한 일을 벌이게 되죠. 욕심이 100% 있다면 30~40%는 내려놓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 셰프는 빵집이 문을 닫을지도 모르는 위기의 순간에도 단가를 절감하기 위해 재료를 아끼거나 새롭게 매장 인테리어를 하는 등의 일시적인 궁여지책은 생각조차 한 적 없다. 그저 손님들이 셰프의 제품을 알아봐줄 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버텨왔을 뿐이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을까. 헌혈증과 식빵을 교환해 헌혈증이 필요한 이들에게 기부했던 것이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소개가 되고, 착한 빵집으로 소문나면서 고재영 빵집에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셰프가 개인적인 취미로 시작했던 SNS활동이 고재영 빵집의 제품들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면서 전국각지로부터 택배 주문이 밀려들었다. “상업적인 마인드로 마케팅을 시작하면 소비자는 거부감부터 가지게 되죠.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진심을 전해야 합니다. 또한 다른 빵집들을 경쟁상대로 생각하기보다는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죠. 저만의 차별화된 색깔을 제품에 녹여내고 이를 변함없이 꾸준히 손님들에게 보여줬던 것이 제가 10년 동안 이곳을 운영할 수 있었던 비법입니다” 근처에 수많은 빵집이 문을 열고 닫았던 시간 동안 고재영 빵집의 유일한 경쟁자는 프랜차이즈 빵집도, 다른 동네빵집도 아닌 ‘고재영 빵집’ 자신이었다. 손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OK 고재영 빵집은 규모는 작지만 40~50가지의 빵 • 과자 제품으로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고 셰프는 빵집을 오픈했던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빵 반죽에 현미미강과 6가지 잡곡을 블렌딩 해 넣어 영양가 높고 소화가 잘되는 건강한 빵을 만들어오고 있다. 다른 이의 노동 가치도 귀히 여길 줄 아는 셰프이기에 정보화마을 농민들이 보내오는 채소와 과일 등을 적극 활용해 제품을 만들거나 매대 한편에 우수한 품질의 농산품들을 함께 진열해 우리 농산물의 홍보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고재영 빵집에서 만드는 제품의 기준은 손님이 아닌 ‘고재영 셰프’ 자신. 빵을 너무 좋아해서 지금도 하루에 빵 4~5개는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셰프는 내가 먹어도 맛있는, 나의 가족에게도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제품만을 만들기 위해 재료에 상당한 신경을 쓴다. 이런 탓에 제품에서 재료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이 45%를 넘어 마진이 크게 남지는 않지만 손님들에게 더 맛있는 빵을 대접한다는 만족감으로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단다. 고재영 빵집의 가장 큰 특징은 열린 마음으로 손님들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반영하는 ‘고객맞춤형’이라는 것이다. 당뇨병이나 유당불내증 같은 지병을 가지고 있는 손님들을 위해 당과 유제품을 사용하지 않거나 비율을 줄인 빵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고, 손님이 원하면 그때그때 케이크나 쿠키, 생초콜릿 클래스도 연단다. 군포 지역에서 2만원 이상 제품을 구매하거나 케이크를 주문하는 손님들에게는 셰프가 직접 배달하는 서비스도 하고 있다고. “동네에서 장사를 하려면 내가 장사를 하고 있는 지역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민들이 저에게 베풀어 주신 만큼 저도 지역사회에 보답을 해야 하는 거죠. 빵을 배달하다 보면 이웃들과 한 번 더 인사도 나눌 수 있고 친해질 수 있어 좋습니다” 이밖에도 고 셰프는 손님들이 즐겁게 빵을 고를 수 있도록 기발하고 재미난 이름을 붙여 제품을 판매한다. 덕분에 일대에서 고재영 빵집은 ‘재미있는 빵집’으로 통한다. ‘봄처녀 바람난 쑥식빵’, ‘대왕마마 소시지빵’, ‘브러우니 브라우니’…. 빵을 고르며 찬찬히 네임카드를 읽어 내려 가다보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웃과 함께 그리는 청사진 27년간 한 눈 한번 팔지 않고 제과•제빵 기술인의 길을 걸어온 고재영 셰프. 중학생이었던 단골손님이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고재영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어린 아이들이 엄마의 손을 잡고 고재영 빵집의 새로운 손님이 되는 순간에도 고재영 셰프는 변함없이 한자리에서 빵을 굽고 있다. 매장의 규모를 늘리거나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셰프 혼자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의 양만 만드는 것도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란다. 그에게 앞으로 고재영 빵집이 꿈꾸는 미래에 대해 물었다. “지금처럼 욕심내지 않고 오래토록 사랑받는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그리고 향후 여건이 된다면 어르신들과 함께 빵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을 하나 만들고 싶네요” 벽면 가득 걸린 상장이 그동안 고재영 셰프가 얼마나 이웃과 함께였는지를 고스란히 증명해주는 듯했다. 고재영 빵집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는 모두 고재영 셰프 혼자가 아닌, 이웃과 함께 만들어가는 빵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