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쁘띠푸 김대현 셰프 “제과는 새로운 예술이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르쁘띠푸(LE PETIT FOUR) 김대현 셰프는 어린 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슬프지 않다. 자석에 이끌리듯 떠난 프랑스에서 ‘제과’라는 예술에 눈떴기 때문이다. 지금 셰프의 곁엔 붓 대신 휘퍼, 캔버스 대신 접시 그리고 갤러리처럼 아늑한 ‘르쁘띠푸’가 있다. 취재․글 구명주 사진 이재희 르쁘띠푸 김대현 셰프는 <파티시에> 지면에 자주 등장한 인기 셰프 중 한 사람이다. ‘과연 누가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하고 고민에 빠질 때마다 기자들은 그의 이름을 떠올렸다. 편집부 구원투수인 그는 ‘변화구’와 같은 디저트를 만든다. 그는 마카롱을 롤케이크처럼 돌돌 말아 버리고, 슈와 몽블랑을 하나로 합치거나, 팥빙수를 눈사람 모양으로 빚어낸다. 최근에서야 유행하기 시작한 ‘마카롱 아이스크림’도 김대현 셰프는 르쁘디푸 초창기부터 선보였다. 게다가 르쁘띠푸의 시그니처 디저트는 아몬드로 만든 파리가 붙어 있는 ‘똥 케이크(Gâteau Caca)’ 아니던가. 부드럽고 달콤한 케이크를 한 무더기의 ‘똥’ 모양으로 만든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구쟁이를 닮았다. 변기를 예술작품으로 내놓은 뒤샹이 예술의 범주를 넓혔듯이 김대현 셰프는 일본풍 디저트가 넘쳐나던 제과 업계에 프랑스 디저트가 설 자리를 만들었다. 세 번이나 응시한 대입시험 놀랍게도 셰프의 과거를 더듬으면 무엇을 할지 몰라 방황한 흔적이 역력하다. 방황을 증명하는 건 셰프가 응시한 대입시험의 횟수. 그는 무려 세 번이나 대입시험을 쳤다. “처음 입학한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거든요. 흥미가 없어 다시 시험을 쳤는데, 두 번째로 들어간 대학에서 뭘 배운 줄 아세요? 물리학이었어요” 물리학과를 두 번이나 등진 그는 세 번째 대입시험을 치른 뒤 기계공학을 택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물리학도, 기계공학도 아닌 미술이 잠들어 있었다. “어릴 적 꿈은 화가였어요. 하지만 예술을 하면 고생한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완강히 반대하셨습니다” 피는 속일 수 없었다. 김대현 셰프의 작은아버지는 목공예 명장 김인천씨. 작은아버지의 정교한 목공예품을 보면서 자란 그는 자연스럽게 예술을 동경했다. 미술로 전향할까 고민도 했지만,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는 체념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김 셰프는 마음의 소리를 억누른 채 기계공학과 졸업장을 손에 쥔다. 상황에 떠밀려 학업을 마친 얼굴엔 짙은 그늘이 내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가 지나간 사회 곳곳엔 패배감이 팽배해 있었다. 아무것도 정한 것 없이 흔들리던 20대 청년. 그는 고향인 전주를 벗어나 누나가 살던 일산으로 올라온다. 어느 날 누나가 그를 불렀다. “빵을 만들어 보는 건 어때?” 흩날리던 밀가루가 동그랗게 혹은 네모나게 변신하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치자 눈앞이 환해졌다. “제과제빵도 예술의 일환이란 생각이 들었죠” 김대현 셰프는 김상엽제과제빵학원에 등록해 기술을 배우고 쌍문동 바게트플라자에 취직해 빵과 과자를 본격적으로 만든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자 그제야 자신에게 맞는 옷이 무엇인지 보였다. “일본에서 제과제빵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일을 마치면 신촌의 학원에서 일본어를 공부하며 떠날 준비를 했죠” ‘유학’을 간절하게 바란 그는 비로소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러나 그가 비행기에서 내린 곳은 ‘일본’이 아니라 프랑스 비쉬(Vichy) 지방. “일본에서 요리학교에 다니던 고등학교 친구가 ‘일본인들도 프랑스에서 제과를 배워 돌아오는데 너는 왜 프랑스를 두고서 일본에 오려 하냐’고 묻더군요. 정통 디저트를 배우려면 프랑스에 가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일본 유학을 꿈꾸며 일본어만 줄곧 공부한 터라, 불어를 잘할 리 만무했다. 조용한 온천 휴양지인 비쉬에서 그는 1년간 어학에만 죽기 살기로 매달린다. 폴 보퀴즈에서 요리와 경영을 배우다 다음 행보는 본격적으로 제과제빵을 배우는 것이었다. 프랑스에 가기 전까지 르코르동 블뢰나 INBP 밖에 몰랐던 셰프에게 프랑스 현지인이 알려준 학교는 리옹의 유명 요리학교인 ‘폴 보퀴즈’. 그러나 폴 보퀴즈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제과제빵이 아니라 요리였다. “프랑스 디저트가 왜 단지 아세요? 그건 음식에 설탕을 그대로 넣는 걸 금기시하는 프랑스 문화 때문이에요. 프랑스인은 음식 대신 디저트로 당분을 보충하죠. 이처럼 요리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디저트 또한 알 수 없겠더라고요” 폴 보퀴즈 외식경영학과에 진학한 그는 ‘디저트는 곧 요리’라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교과 과정을 밟는다. 폴 보퀴즈에서 김 셰프는 요리, 제과제빵, 소믈리에 등 음식과 관련된 이론과 실기는 물론이고 회계, 마케팅, 인적관리 등 가게를 경영할 때 필요한 경영 지식까지 두루두루 배울 수 있었다. ‘전문경영학교’를 지향하는 폴 보퀴즈의 학풍 덕분이었다. “폴 보퀴즈는 2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어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셰프와 직원은 모두 재학생이랍니다. 저 역시도 학교 안에서 일상적으로 학업과 레스토랑 일을 병행했어요” 프랑스 유명 셰프를 만나는 행운 실습 프로그램이 잘 갖춰진 폴 보퀴즈는 김 셰프를 성장시켰다. 첫 번째 실습 장소는 라 피라미드(La Pyramide). 당시 레스토랑에는 2013년 쿠프 뒤 몽드 챔피언인 조프리 라 퐁텐(Joffrey Lafontaine)이 일하고 있었다. “조프리 라 퐁텐 셰프는 쿠프 뒤 몽드에 글라시에 자격으로 출전했을 만큼 아이스크림을 잘 다뤄요. 그때 배운 아이스크림 기술을 르쁘띠푸에서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김대현 셰프가 본격적으로 제과에 뛰어든 시기는 2학년이 되면서부터다. 라 피라미드에서 요리와 제과를 동시에 공부했다면, 실습을 나간 파리 플라자 아테네 호텔에서는 제과에만 매달릴 수 있었다. 당시 파리 플라자 아테네 호텔의 제과장은 스타 셰프인 크리스토프 미샬락이었다. “크리스토프 미샬락 셰프의 머리에는 디저트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어요. 식재료를 다양하게 사용하고, 창의적인 제품을 위해 몰드까지 일일이 만들어 쓰는 모습에 감명 받았죠” 학교를 마칠 즈음, 김대현 셰프에겐 또 하나의 행운이 찾아온다. 폴 보퀴즈 로랑 코르드니에(Laurant Cordenier) 교수로부터 조교로 일해 달라는 청을 받은 것이다. 클래식 레스토랑의 대표 주자인 ‘라믈루아즈’ 출신인 로랑 코르드니에 교수는 기본에 충실한 정통 디저트를 만드는 인물이었다. MOF를 준비하는 교수의 곁에서 그는 제품 개발을 돕고, 교수의 학생들을 함께 가르치는 역할을 했다. 프랑스 디저트를 전파시키다 그는 프랑스에 계속 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때마침 한국에서 중식당을 운영했던 매형과 누나가 프랑스에 이민을 준비하던 터였다. 매형과 프랑스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할 생각을 했지만 프랑스의 이민 정책이 까다로워지면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차선책은 귀국이었다. 수 년 만에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김대현 셰프는 창업을 준비한다. “2008년 당시만 해도 디저트만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카페가 드물었어요. 주변에서 시기상조라고 많이 반대했죠. 심지어 매장에서 판매할 마카롱을 주변에 테스트용으로 나눠줬는데, 혹평을 받았죠” 셰프는 물러서지 않았다. 홍대에 르쁘티푸를 매형과 함께 열고, ‘너무 달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손사래를 치던 마카롱도 당당하게 내놓았다. “마카롱은 ‘한 입 디저트’의 대표 제품이잖아요. 가게 이름 때문에라도 마카롱은 포기할 수 없었죠” 2008년에 첫선을 보인 ‘부티(Boutiy)’ 마카롱과 ‘바나나 스플리(Banana Split)’ 마카롱은 지금도 르쁘띠푸 쇼케이스를 지키고 있다. 2개에 불과했던 마카롱의 가짓수는 현재 15개에 이른다. 김대현 셰프는 제과를 가르치는 ‘에꼴 르쁘띠푸’를 작년부터 시작했다. 에꼴 르쁘띠푸의 수업 목표는 ‘공식만 알면 1,000가지의 디저트와 1,000가지의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다’이다. 레시피만 달랑 알려주는 클래스가 넘쳐나는 가운데, 수강생이 레시피를 직접 개발할 수 있도록 제과의 기본 원리와 응용법까지 전수해주는 르쁘띠푸의 수업은 단연 돋보인다. “한 마디로 물고기를 잡아주지 않고 잡는 법을 알려주는 거죠” 그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동시에 스스로 공부하는 모범생이다. 서울국제요리경연대회나 룩셈부르크 컬리너리 월드컵에 출전한 것도 하나라도 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요즘 그는 건강에 좋은 디저트 만들기에 부쩍 관심이 많다. “일본에서는 채소를 이용한 디저트가 인기라고 하더군요. 아보카도, 당근, 토마토 등 몸에 좋은 재료로 디저트를 만들면 어떨까요?” 셰프가 가장 즐거워하는 순간은 ‘새로운 디저트를 연구하는 때’란다. “디저트를 개발하기 전에 어떤 맛이 날지 상상해 봐요. 막연히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제품이 세상에 나와 큰 인기를 얻으면 행복하죠” 뿔테 너머로 잔잔하게 웃는 그에게선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일치하는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긍정의 에너지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