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 같은 마음으로 이에나 파이 취재•글 윤정연 사진 이재희 사람이 재산이다 강남구 논현동 작은 골목길. 이에나 파이가 이곳에 자리잡은 지 어느덧 만 10년째다. 한곳에서 오래도록 버티기만 해도 ‘대단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사라지는 가게들이 많은 요즘. 이곳에서 10년째 빵을 굽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나 파이의 이은봉 셰프는 그 비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람이 재산이라고. 그래서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머리 굴리지 않을 것, 사람은 늘 넉넉하게 배치할 것을 염두에 둔다고 했다. 그리 크지도 않은 매장에 오전과 오후 두 명씩 직원을 두고, 공장에서 10명의 셰프들이 업무를 분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에 대한 성취동기가 뚜렷한 직원들이 만드는 제품의 퀄리티가 갈수록 좋아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마치 자기 가게처럼 열심히 일하는 직원뿐만이 아니다. 10년 전에는 마늘빵을 만들면 냄새 난다고 투덜, 반죽기를 돌리면 시끄럽다고 눈치주기 일쑤였던 건물주는 이제 최고의 지원군이 됐다. ‘이에나 파이’라는 상호명 역시 그 옛날 본지의 기자가 지어준 것이라고 하니, ‘사람이 재산’이라는 이은봉 셰프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성공의 3요소를 갖추기까지 처음부터 성공을 거둔 집들이 얼마나 될까. 이에나 파이 역시 혹독한 시련기를 거쳤다. 상호명인 이에나 파이에서 알 수 있듯 시작은 파이전문점이었다. “시쳇말로 쫄딱 망할 뻔 했죠. 주변에 아파트가 엄청 많은 것을 보고 조각 케이크와 파이를 판매하는 가게를 열었는데, 저녁 8시만 되면 지나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간과했어요. 단일 품목만 만든다는 것도 유행을 지나치게 앞서 갔고요” 부랴부랴 제품군을 늘리고 조금 궤도에 올랐다 싶었다. 그러자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의 맹공격이 이어졌다. 바로 앞 모퉁이에 T사가 들어선다는 것을 안 후, 한 달간 잠을 못 이뤘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다. 오픈 후 처음 3일간은 매출이 뚝뚝 떨어지더니 3일 후부터는 다시 쭉쭉 오르더라는 것. 자본금을 앞세운 대형 빵집에 기죽지 않고, 늘 하던대로 재료를 아끼지 않으며 제품을 만드는 정직함이 소비자의 발길을 돌린 것이다. 그 후에도 몇 차례 크고 작은 빵집들이 이 좁은 골목에 들어섰지만 이에나 파이는 흔들리지 않았다. “크림빵을 사면 가운데에만 크림이 들어있는 경우가 있잖아요. 하지만 손님이 처음부터 빵의 가운데를 먹지는 않아요. 가장자리를 베어 물었을 때의 첫 느낌이 더 오래 기억되고요. 그래서 직원들에게 늘 필링을 가장자리까지 아낌없이 넣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에나 파이에서 맛볼 수 있는 제품은 대략 120여 가지다. 그 중에서 약 90%의 제품에 치즈를 사용한다. 이 셰프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박리다매를 노린다고 귀띔했다. 재료를 대량으로 저렴하게 구매해서 제품에 듬뿍 사용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이에나 파이의 제품은 어느 것을 먹어도 필링이 야박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가게의 위치다. 상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것이 이 셰프의 생각이다. 이미 완벽한 상권이 조성되어 있는 곳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그럴 경우 엄청난 월세를 감당해야 한다. 셰프는 이럴 경우 차라리 불모지를 공략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이 셰프는 근처에 한정식 집과 웨딩홀 건물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앞으로 이곳에 새 상권이 조성되겠구나’ 직감했다고. 또 최근에는 생각지도 않게 매장 맞은 편 건물 2층에 생긴 고깃집이 매출 상승에 기여하고 있단다. 2층에 앉아 고기를 먹으면서 1층의 빵집을 바라보다 보면, 배가 부른데도 달콤한 것이 당기는 것이 사람 심리인 것 같다며 말이다. 상권이 조성되어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면 그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도록 만드는 일도 잊어선 안 된다. 이에나 파이에서는 이곳만의 독특한 행사를 자주 펼친다. 매년 밸런타인데이에 무료로 초콜릿을 나눠주는 이벤트는 이에나 파이를 알리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적절한 상권, 정직한 제품, 독자적인 이벤트의 삼박자가 어우러져 오늘날의 이에나 파이를 있게 한 셈이다. 재야의 숨은 고수는 옛말, 나를 드러내라 취재차 이에나 파이를 찾은 날, 매장 앞에서는 새로운 소간판을 다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대한민국 제과기능장의 집’이라는 문구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지금까지는 기능장이니 명장이니 하는 명예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냥 맛있는 빵을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빵집 앞을 지나는데 손님들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여기가 제과기능장 셰프 가게래, 맛있겠다’ 라고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가게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제품을 먹어보기 전 정보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죠” 이 셰프는 뒤늦게 시험을 치르고 제과기능장이 됐다. 언젠가는 자신의 롤모델인 김영모 셰프처럼 명장이 되는 날도 꿈꾸어 본다. 나 자신의 브랜드력을 키울 것, 상권과 제품은 끊임없이 공부할 것, 자신을 속이지 말고 초심을 잃지 말 것. 이것이 10년간 우직하게 한 자리를 지켜온 이에나 파이의 장수 비결이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청석빌딩 95 102호 문의 02-515-0427